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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년간 버틴 한국 조선, 실력발휘 때가 왔다 [Big Picture]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21-04-29 조회수 53
올 1분기 선박 신규 수주, 中 제치고 절반 넘게 싹쓸이, 고부가가치 선박 80%는 한국 몫

 IMO 환경규제 강화로 LNG선박 수요 크게 늘어, 기술력 월등한 韓에 주문 쇄도

 혹독한 불황 이겨내고 세계1위 굳히기 나선 K조선, 부활의 축포 터트리기엔 아직 배가 고프다

 무탄소 선박·스마트 조선소… 中·日이 절대 넘볼 수 없게 초격차 전략으로 거침없이 진격을


 인간이 만드는 제품 중 덩치로 치면 단연코 선박이 으뜸이다. 울산 미포만에 자리 잡은 현대중공업이 건조하는 1만9200TEU(용어설명 1)급 컨테이너선의 길이는 400m. 여의도 63빌딩의 높이가 250m이니 이 빌딩을 눕힌 것보다 길다. 폭은 58.6m, 높이는 30.5m. 직접 배에 타보면 감이 온다. 이 배를 전부 국민주택 규모의 아파트로 채운다면 2428개가 들어간다. 이런 덩치의 제품을 통으로 제작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레고 쌓듯이 조립한다.


 1950년대까지 유럽이 석권하던 조선산업을 일본이 빼앗아온 비밀이 여기에 있다. 과거에는 강판을 붙이려면 철판에 구멍을 내고 리벳을 끼운 뒤 튀어나온 부분을 망치로 두드렸다. 일본이 개발한 건 블록 공법이다. 따로 블록을 만들고 그걸 용접하는 방식이다. 그 뒤로 유럽은 일본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지금 나오는 선박은 다 블록 공법으로 만든다. 대형 컨테이너선 같은 경우 300여 개의 블록이 필요하다.

 현대중공업 정문에 들어서면 맨 앞에 보이는 건물이 바로 대조립공장이다. 대형 블록을 조립한다고 그렇게 이름 붙였다. 한가운데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한 말이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될 수 있는 길이다."

 정 명예회장이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와 미포만 모래사장 사진, 그리고 외국 조선소에서 빌린 유조선 설계도 한 장 달랑 들고 유럽을 돌면서 외자를 끌어들여 지은 조선소. 거기서 첫 선박을 진수할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왔다. 그러고는 '조선입국(造船立國)'이라고 썼다. 우리도 배를 만들어 돈도 벌고 나라도 지키자는 바람을 담았다. 지금은 한국조선해양 기술자문으로 있는 신종계 전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조선은 성격상 승자독식의 시장이며 본질적으로는 국가 대항전"이라면서 "창업주의 글도 그런 취지"라고 설명한다.

 공교롭게도 지금 세계 조선산업은 한국, 중국, 일본이 국가의 이름으로 싸운다. 중국은 1, 2위 국영 조선사를 합병해 중국조선기업으로, 일본도 1, 2위 기업을 합쳐 일본조선으로 새 출발했다. 현대, 삼성, 대우라는 빅3 조선소를 보유한 한국은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는 합의를 맺은 뒤 한국조선해양이라는 통합 법인을 출범시켰다.

 한국이 1960년대 이후 조선업의 패권을 차지했던 일본을 제친 건 1993년. 호황의 과실을 차지하면서 달러 박스로의 입지를 확고하게 굳혔다. 호황과 불황은 반복되는 법. 운명의 시간이 찾아왔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조선은 금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큰돈을 본인 부담으로 지불할 사람은 없다. 리먼 사태는 금융권이 금고를 잠그게 만든 사건이었다. 배를 사려는 해운사들은 조선사에 선수금을 줘야 하는데 이 선수금 지급이 연기되고 향후 사업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판단해 발주 계약을 취소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궁하면 통한다고 이때 한국 조선에 새로운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게 해양플랜트였다. 바다에 매장된 석유나 가스를 시추해 생산하는 설비로, 그야말로 바다에 공장을 짓는 비즈니스다. 잘만 하면 큰돈을 번다. 당시 해양플랜트는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넘으면 채산성이 맞았다(최근엔 50~60달러 선). 리먼 사태는 석유 가격의 인상을 초래했다. 유가는 급등세를 타기 시작해 2012년 평균 유가는 110달러에 달했다. 때가 됐다. 한국의 조선소들이 뛰어들었다. 한국 말고는 해양플랜트 사업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없었다. 그 정도 규모를 완성할 대형 도크를 보유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다. 제조야 한국 조선의 실력으로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기초 설계는 유럽이나 미국의 엔지니어링 회사들의 몫이었고 턴키(Turn-Key) 방식으로 계약이 이뤄져 문제 발생 시 모든 손실은 고스란히 우리의 부담으로 떨어졌다.

 이 와중에 충격적인 악재가 터진다. 셰일가스였다. 대체재가 나오니 유가는 폭락했다. 4년 만에 3분의 1 토막이 났다. 배럴당 40달러까지 내려가면서 해양플랜트는 계륵이 돼버렸다. 심해시추를 할 이유가 없어졌다. 참혹한 상황이 빚어진다. 2015년 이후 지금까지 글로벌 해양 시추선의 발주량은 전무하다. 조선 3사가 어마어마한 적자를 보게 된 배경이다. 2015년의 경우 빅3의 적자를 더하면 5조원을 웃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구조조정의 순간이 찾아왔다. 2015년부터 3년간 조선업에 종사하는 직원 반이 직장을 잃었다. 대략 20만명에서 10만명으로 줄었다. 빅3 임직원 수는 36% 감소했고 평균 급여는 10% 삭감됐다.

 때마침 중국이 패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사실 중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국가 차원에서 조선업을 키우기 시작했다. 중국에 필요한 선박은 중국에서 만드는 국가 주도 산업정책을 펼치고 금융을 밀어주었다. 조선굴기였다. 드디어 2012년, 한국이 조선 패권을 차지한 지 20년 정도 흐른 시점에 중국은 조선 1등 국가가 된다. 조선업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해가 2016년이다. 한국은 수주절벽을 맞는다. 전 세계 발주량이 3분의 1 토막 났는데 한국은 그중 16%만 차지했다. 끔찍한 숫자다. 수주한 배도 75척. 삼성중공업은 겨우 5척에 불과했다. 일본에도 밀렸다.

 불황의 긴 터널은 이렇게 시작됐다. 수요는 없는 데다 공급은 과잉인지라 채산성도 맞지 않았다. 출혈경쟁이 벌어졌다. 말 그대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듯했다.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었다. 치고 올라오던 중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은 아예 기를 못 폈다.

 이제야 어두운 그림자가 서서히 걷혀가는 듯하다. 낭보가 속속 터져 나온다. 우리나라 조선사의 올 1분기 글로벌 선박의 수주 물량은 총 532만CGT(용어설명 2). 전체의 절반 이상을 싹쓸이했다. 수주량 기준으론 작년에 중국을 제치고 다시 패권을 장악했다. 8년 만이다. 단순 수치만 보면 의미가 축소된다. 수주의 질을 봐야 한다. 고부가가치 선박을 한국이 어느 정도 차지하느냐가 관건이다. 그게 대형 컨테이너선(1만2000TEU 이상), VLCC(초대형 원유운반선),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다. 한국은 이 세계의 시장을 각각 70%, 100%, 100% 먹었다. 물량 기준으로 평균 내면 76%다.

 한국 조선의 미래는 먹거리가 계속 나올지, 그 먹거리 중 지금처럼 고부가가치 선박을 한국이 가져올 수 있느냐, 그리고 미래의 경쟁력을 키우느냐에 달려 있다.

 첫째, 둘째 문제와 관련해 산업은행의 노형복 리서치센터장은 3가지 변수를 지적한다. 첫째 코로나 이후 주춤했던 물동량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선박 운임이 급상승한 게 이를 입증한다. 대표적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선 운임지수는 1년 새 3배 이상 올랐다. 이는 선박 발주로 이어진다. 전 세계 조선 수주량을 보면 2019년 2900만CGT에서 작년엔 2100만CGT로 급격히 줄었다. 그러던 게 올 1분기에만 1000만CGT를 넘겼으니 상전벽해다. 조선·해운 시황 분석업체인 클라크슨리서치는 작년 9월만 해도 올해 세계 선박 발주 전망을 2380만CGT로 예상했다. 그러던 걸 올 3월에는 3150만CGT로 무려 30% 이상이나 높여 잡았다. 단기간 내에 이런 수정 전망은 전례가 없다.

 두 번째 변수는 선박의 대형화다. 최근 삼성중공업이 세계 7위 컨테이너선사인 에버그린으로부터 따낸 20척 컨테이너선도 1만5000TEU급이다. 이 대목에서 한국은 중국, 일본보다 멀찌감치 앞서간다.

 마지막 세 번째 환경 규제다. 가장 중요한 변수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선박 연료의 황 함유량을 작년부터 0.5% 이내로 제한했다. 그리고 온실가스 감축이란 새로운 규제를 발동했다. 선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2008년 대비 2025년엔 30%, 2030년엔 40%, 2050년엔 70%를 줄이라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가 LNG 추진선이다. 과거 선박은 벙커C유를 때서 운항했다. 이 연료를 LNG로 바꿔야 하는데 그러려면 아예 새로운 배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이 독보적이다. 올해 전 세계가 발주한 LNG 추진선은 모두 44척. 그중 34척을 한국이 차지했다. 중국은 고작 7척. 그나마도 자국에서 일감 몰아준 게 5척이다. 상대가 안 되는 경쟁력이다.

 중국이 한국을 뛰어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사고가 터졌다. 후둥중화조선이 건조한 배가 호주 해상에서 엔진 결함으로 운항이 중단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 중국엔 브레이크가 걸리고 자연스럽게 한국에 반사이익이 돌아왔다. 환경 규제는 한국 조선업엔 축복이다. 노 센터장은 "LNG 운반선이든 추진선이든 전 세계 발주량의 80% 정도가 한국의 몫"이라며 "한국이 조선업 1위를 탈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신 교수는 "비록 한국이 물량 면에서는 8년간 중국에 1등 자리를 내줬지만 경쟁력 면에서는 결코 최강의 지위를 상실한 적이 없다"며 "한국 조선의 저력에 자부심을 갖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장밋빛 미래만 그릴 건 아니다. 노 센터장은 "정상을 회복하려면 통상 연간 물량이 1300만CGT는 돼야 하는데 중국에 1등을 뺏긴 후 아직도 이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으며 작년엔 880만CGT 정도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아직은 배가 고프다. 또 수주를 따내면 배를 만들기 시작하기까지 통상 1년의 시차가 있다. 내년 정도 돼야 조선소 도크에 온기가 돈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조선·해양 분야 기업인을 불러 인력에 대한 대비를 주문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래 경쟁력 면에서도 초격차를 유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 교수는 "중국이 언제 다시 따라올지 모르며 일본이 계속 죽 쑤고 있으리란 보장도 없다"고 지적한다. 이상준 산업통상자원부 조선해양플랜트 과장은 두 가지를 지목한다.

 우선 친환경 선박. 그는 "현재 우리가 우위에 있는 건 LNG인데 이것만으로는 미래를 담보하지 못한다"며 "수소나 암모니아 같은 무탄소 선박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선박은 조선업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디지털 전략. 스마트 선박과 스마트 조선소가 핵심이다. 이 과장은 "자율운항 선박과 관련해서는 이미 예비타당성조사가 통과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수주 경쟁력 확보의 관건인 스마트 조선소는 가시권에 진입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조선이 긴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오려고 하는 지금이야말로 한국의 저력과 실력을 보여줄 때다. 그동안 너무나 긴 세월을 움츠리고 지냈다.

 □ <용어 설명>
 1. TEU : 20ft(609.6㎝)의 표준 컨테이너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 컨테이너선의 규모를 측정할 때 사용된다.
 2. CGT(Compensated Gross Tonnage) : 표준선환산톤수라고 번역하며 선박의 종류 및 형태의 난이도에 따라 건조 시 공사량을 동일하게 평가하기 위한 지표다. 총톤수(GT)에 환산계수를 곱해 산출한다. 같은 크기라도 CGT가 큰 선박이 비싸다.
 3. VLCC : 초대형 원유운반선으로 통상 20만DWT 이상 규모다. DWT(Dead Weight Ton)란 선박 자체의 무게를 제외하고 순수한 화물(원유)을 적재할 수 있는 무게다.


 출처 : 매일경제